보이지 않는 전선의 병사들, '돌봄 위기' 속 군가족을 보다 – 1,400만 명의 숨은 간병인을 위한 사회적 해법을 모색할 때

대한민국도 고령화와 만성질환의 확산, 정신건강 위기에 직면하며 '간병'은 개인과 가정의 문제를 넘어선 사회적 의제가 되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군인 및 국가유공자 가족 돌봄’은 지금껏 조명을 받기 어려웠던 보건복지 사각지대다. 최근 미국 엘리자베스 돌 재단(Elizabeth Dole Foundation)이 발표한 보고서는 이 주제를 글로벌 건강·복지 차원에서 다시금 재조명하게 만든다.

군복을 벗은 후에도, 전쟁은 계속된다

2001년 이후 미국이 겪은 장기전과 이에 따른 참전 병력의 증가 속에서, 현대 의학은 많은 군인의 생명을 구했지만 동시에 생존 이후의 삶은 '간병'이라는 새로운 전장을 동반하게 되었다. 2014년 미국의 군인 및 참전용사 가족 간병인은 550만 명으로 추산되었으나, 2025년에는 무려 1,430만 명으로 급증했다. 이는 단순히 미국의 문제라 보기는 어렵다. 한국 역시 베트남전, 광주민주화운동, 6·25전쟁 고령 생존자의 건강 악화와 더불어 국가유공자 가족의 만성 간병 부담이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림자 간병인 1억 명, 그리고 550만 명의 아동

RAND 연구소와 엘리자베스 돌 재단의 공동 조사에 따르면, 미국 내 전체 비공식(무급) 간병 인구는 1억 명을 상회하고, 이 중 약 550만 명은 아동·청소년으로 나타났다. 이는 단순한 '가족의 희생' 문제가 아니다. 간병은 경제활동 중단, 정신건강 악화, 사회적 고립 등 복합적인 위험 요인을 수반한다. 국내 간병 실태를 들여다보아도, 보호자의 우울증과 간병살인 사건은 더 이상 예외적 사례가 아니다.

간병은 ‘보건 시스템’의 일부다

엘리자베스 돌 재단은 단순히 개인 지원을 넘어서, 미국 보훈처(VA)와 협력해 간병 가정 중심의 의료모델을 구축하고 있다. 병원 접수 단계부터 가정 내 회복까지 체계적인 간병자 지원이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재정비한 것이다. 또한 AARP, 로잘린 카터 간병연구소, Wounded Warrior Project 등과 연계해 가정 내 돌봄을 체계적 공중보건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공단 또한 '지역사회 통합돌봄'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간병가정 중심의 건강관리 모델은 미비한 것이 현실이다.

국가안보와 경제 시야에서의 '돌봄'

흥미로운 점은, 재단은 간병 문제를 단순 가정문제가 아닌 ‘국가안보의 기반’으로 보았다. 실제로 군인의 재입대율, 자녀의 군입대 비율 모두 군가족의 돌봄 안정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다. 더불어 무급 간병 활동의 시장가치가 최소 연 119조 원에서 최대 487조 원까지 추산되는 점은 간병의 경제적 비용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는 우리 사회의 건강보험 재정 안정성, 고용 정책, 지역경제와도 직결된 문제다.

우리는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가?

한국사회는 지금, '돌봄을 돌보는 사회'로 전환할 골든타임에 서 있다. 이대로 20년 뒤 우리의 건강 수명은 보장될 수 있을까? 돌봄을 국가가 책임져야 할 공공의제로 인식하고, 체계적인 간병자 지원 체계를 제도화해야 한다. 개인으로서는 다음을 실천할 수 있다.

• 가족 중 간병인이 있다면 그들의 정신건강 상태를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지역사회 정신건강 복지센터에 문의하라.
• 돌봄을 나누는 가족 내 역할 분담 방식을 구체화하라. 1인이 전담하지 않도록 회의를 열고 공감대를 조성하자.
• 지역 커뮤니티 케어 프로그램(보건소 주관 돌봄 체험교실, 간병자 휴식지원 등)에 적극 참여하라.
• 간병 정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정기적으로 건강보험공단, 복지부, 지자체 홈페이지 정보를 확인하자.

이제 간병은 피할 수 없는 우리 모두의 과제다. 작은 생활 습관 하나가, 한 사람의 우울과 고립을 막고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 간병 가족들의 삶이 존중받는 사회야말로 진정한 회복 탄력성이 있는 사회다. 지금, 우리의 건강정책과 인식이 바뀌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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